인트로

돈 들이지 않고 베껴 쓸 책, 저작권이 끝난 우리 고전에서 찾기

2026.10.22

필사를 시작하려고 책을 고르다 보면 생각보다 오래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는 책은 대개 서점에서 새로 사야 하고, 처음부터 두꺼운 책을 사 두기는 부담스럽습니다. 그럴 때 눈여겨볼 만한 곳이 있습니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나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된 우리 고전입니다.

여기서는 소설과 시를 빼고 비문학만 골랐습니다. 일기, 기행문, 역사서, 나라 살림을 고민한 글처럼 사실과 생각을 적은 글들입니다. 한 문장씩 천천히 옮겨 적기에 잘 맞는 글이 많습니다.

저작권이 끝났다는 것

조선 시대와 그 이전에 쓰인 글은 원문 자체의 저작권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근대에 쓰인 글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해를 봅니다. 아래 목록의 근대 저자들은 1914년에서 1949년 사이에 세상을 떠났고, 우리 저작권법에서 그 글들의 보호기간은 이미 끝났습니다.

다만 번역문은 따로 봐야 합니다. 한문으로 쓰인 고전을 오늘날 우리말로 옮긴 번역문에는 번역한 사람의 저작권이 따로 있습니다. 원문은 자유로워도 서점에서 파는 번역본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에는 공공기관이 무료로 공개해 둔 번역문과 원문을 읽을 수 있는 곳을 함께 적었습니다.

갈래별로 고른 책

역사를 쓴 책

  • 삼국유사 (일연) — 고려 후기에 승려 일연이 엮은 책입니다. 나라의 공식 역사서가 다루지 않은 단군 이야기, 향가, 옛이야기와 민간 신앙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 단재 신채호가 일제강점기에 쓴 고대사입니다. 역사를 '나'와 '나 아닌 것'이 맞서는 과정으로 보고 고대사를 다시 써 내려갔습니다. 신채호는 1936년에 세상을 떠났고, 책은 1948년에 묶여 나왔습니다.
  • 독사신론 (신채호) —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역사 평론입니다. 남의 나라를 기준으로 우리 역사를 보던 시각을 비판한 글로, 신문 연재라 한 회씩 끊어 쓰기 좋습니다.

나라 살림을 고민한 책

  • 목민심서 (정약용) —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책으로, 고을을 맡은 관리가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적었습니다.
  • 북학의 (박제가) — 청나라를 직접 다녀온 박제가가 수레와 배, 상업과 교역을 살려야 한다고 쓴 글입니다.
  • 성호사설 (이익) — 성호 이익이 하늘과 땅, 사람과 제도, 역사와 글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적어 모은 책입니다. 짧은 항목이 많아 하루 한 항목씩 옮겨 적기에 알맞습니다.

길 위에서 쓴 책

  • 열하일기 (박지원) —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청나라 사절단을 따라 열하까지 다녀오며 쓴 기록입니다. 본 것을 적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보는 조선 선비들의 생각까지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 서유견문 (유길준) — 유길준이 미국과 유럽을 보고 와서 서양의 정치, 법, 교육, 산업을 정리한 책입니다. 1895년에 나왔습니다.
  • 표해록 (최부) — 조선 성종 때 관리 최부가 제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중국 남쪽 해안에 닿은 뒤, 북경을 거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적었습니다.

전쟁과 삶을 적은 책

  • 난중일기 (이순신) — 임진왜란 동안 이순신이 거의 날마다 쓴 일기입니다. 날짜마다 글이 끊겨 있어 하루치씩 옮겨 적기에 좋습니다.
  • 징비록 (류성룡) — 임진왜란을 겪은 류성룡이 지난 잘못을 돌아보고 다음을 대비하자는 뜻으로 쓴 회고록입니다.
  • 백범일지 (김구) — 백범 김구가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두 아들에게 남기려고 쓴 상권과, 그 뒤에 이어 쓴 하권으로 이루어진 자서전입니다.
  • 권태, 산촌여정 (이상) —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이 쓴 수필입니다. 시골에서 보낸 날들을 이상만의 문장으로 적었습니다. 길지 않아 한두 번 앉아서 다 옮겨 쓸 수 있습니다.

어디서 읽을 수 있나

  •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db.itkc.or.kr) — 목민심서, 북학의, 성호사설, 열하일기, 표해록, 난중일기, 징비록, 삼국유사를 고전번역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함께 볼 수 있고, 무료로 열립니다.
  • 위키문헌 (ko.wikisource.org) — 백범일지, 독사신론, 이상의 수필 권태와 산촌여정은 본문이 실려 있습니다. 서유견문과 조선상고사는 목차부터 따라 들어가면 됩니다.
  • 공유마당 (한국저작권위원회, gongu.copyright.or.kr) —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글을 모아 두는 곳입니다. 근대에 쓰인 글을 찾을 때 함께 검색해 보세요.

판본을 고를 때

혼자 읽고 손으로 베껴 쓰는 데에는 크게 따질 것이 없습니다. 다만 베낀 글을 사진으로 올리거나 여럿에게 나눌 생각이라면, 그 번역문을 펼친 화면에 적힌 이용 조건을 한 번 살펴보세요. 같은 책이라도 어느 번역을 쓰느냐에 따라 조건이 다릅니다.

함께 쓰는 자리

긴 책을 혼자 베끼다 보면 며칠 만에 손이 멈추기도 합니다. 카타르시스코드의 필사 모임은 같은 시간에 모여 각자 고른 글을 옮겨 적는 자리입니다. 지금은 동네에서 직접 만나는 모임이 열리고 있고, 화면을 켜고 같은 시간에 쓰는 온라인 만남도 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위 책 가운데 한 권을 들고 오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