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토요일 오후 세 시, 필사 필담 모임의 두 시간

2026.07.23

토요일 오후 두 시 오십 분, 신중동의 한 카페. 모임장이 제일 먼저 와 있습니다. 창가 쪽 여섯 명 자리. 지난번에 앉아보고 콘센트가 있고 스피커에서 먼 자리라는 걸 알아뒀어요. 테이블 위에는 여분의 펜 몇 자루와 오늘 읽을 대목을 적어온 종이. 한 명이 먼저 도착해 목례를 하고 음료를 주문하러 갑니다. 회원들이 하나둘 오면서 테이블에 컵이 늘어나요. 케이크를 시킨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 늦은 한 명이 미안한 얼굴로 조용히 의자를 뺍니다.

세 시, 각자 쓰기 시작합니다

여는 말은 삼 분이 안 걸립니다. "오늘은 6권, 여기부터 여기까지예요. 삼십 분 쓰고 바꿔요." 그게 전부예요. 각자 책을 펴고, 펜 뚜껑 여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그리고 조용해집니다.

카페는 사실 조용하지 않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웃음이 터지고, 원두 가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울려요. 그런데 이상하게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섯 명이 고개를 숙이고 쓰고 있으면 그 테이블만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아서, 소음이 배경으로 밀려나요. 완전한 정적보다 오히려 낫습니다. 내 펜 소리가 남에게 안 들리니까요.

삼십 분 동안 벌어지는 일은 제각각입니다. 한 명은 벌써 다 쓰고 자기 문장을 다시 읽고 있고, 한 명은 반도 못 썼는데 아무도 재촉하지 않아요. 중간에 화장실 다녀오는 사람도 있고, 식은 커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쓰는 사람도 있어요. 손목 터는 사람도. 평소에 이렇게 오래 손글씨를 쓸 일이 없으니까요.

세 시 사십 분, 종이를 바꿉니다

모임장이 조용히 "바꿔볼까요" 합니다. 여기가 제일 어색한 순간이에요. 처음 온 사람은 자기 글씨를 남에게 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노트를 반쯤 가리고 건넵니다. "글씨가 좀…" "저도요." 이 두 마디가 이 모임에서 제일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옆 사람의 노트를 받아 읽습니다. 같은 대목을 옮겨 적었는데 밑줄 친 데가 달라요. 그 아래 적힌 한 줄 — "나는 왜 이 문장에서 멈췄을까요. 요즘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어서인 것 같아요." 말로 물었다면 "요즘 어때요?" 정도로 스쳤을 이야기가 종이에는 이렇게 옵니다. 받은 사람은 답을 바로 못 적어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펜을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서너 줄을 적어 돌려줍니다.

이게 필담(筆談)입니다. 말 대신 글로 묻고 답하는 대화. 옆에서 보면 아무 말 없이 종이만 주고받는 여섯 명인데, 테이블 위에서는 대화가 몇 겹으로 오가는 중이에요.

네 시 이십 분, 이제 입을 엽니다

마지막 이십 분은 말로 합니다. 순서가 좋아요. 이미 종이로 한 번 걸러진 이야기라 "아까 적어주신 그 답이요" 하고 시작하니까, 겉도는 안부를 건너뛰고 바로 깊은 데서 시작합니다. 말수가 적던 사람이 이 시간에는 의외로 말을 해요. 자기가 쓴 걸 읽기만 하면 되니까요.

네 시 오십오 분. 다음 만남 날짜를 확인하고, 컵을 반납하고, 각자 노트를 가방에 넣습니다. 다들 빈손이 아니에요. 오늘 옮겨 적은 한 단락과, 이웃이 내 질문 아래 적어준 손글씨 답이 노트에 남아 집으로 갑니다. 단체 채팅방 알림은 울리지 않습니다. 울릴 필요가 없어요. 대화는 이미 가방 안에 있으니까요.

처음 오는 분에게

준비물은 책 한 권, 펜 하나, 노트 한 권. 음료는 각자 주문합니다. 글씨는 못 써도 됩니다. 모임장 악필 보면 바로 마음이 놓일 거예요. 삼십 분 안에 다 못 써도 괜찮고, 필담에 뭐라고 답할지 오래 고민해도 괜찮습니다. 오래 걸려도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온라인으로 하는 자리도 있어요. 화면 켜놓고 각자 쓰다가, 채팅창으로 노트를 주고받아요.

catharsiscode는 이웃과 함께 책을 읽고, 필사하고, 필담을 나누는 독서·필사 모임입니다. 토요일 오후의 그 테이블이 궁금하다면, 모임 둘러보기에서 가까운 필사 필담 모임을 찾아보세요.